공자(公子),맹자(孟子)와 같이 그릇에도 품격이 다른 선생님이 있다. 옛시절 아버지 심부름으로 술도가에서 외상으로 막걸리를 받아오며, 배고픔과 달착지근함에 한모금 입대고 들이키던 주전자.
그런 그 주전자를 한자어로 쓰면 "주전자(注煎子)" 가 된다. 그릇에다 자(子)자란 존칭을 붙인 경우는 오직 주전자뿐으로 우리말로 하면 "선생님" 또는 "님"이란 뜻이다. 주(注)는 "붓는다."란 뜻이고, 전(煎)은 "끓인다."는 뜻인데---
왜 붓고 끓이는 그릇에 선생님이란 존칭의 자(子)자를 쓴 이유는,주전자가 차를 끓이고 붓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막걸리 주전자와는 달리 우리 옛 선비들에게 주전자는 인간으로 하여금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을 스스로 바라보게 하는 내면의 성찰을 통해 지혜를 깨닫게 하는 차를 끓여 내오는 그릇이었다.
특히 우리의 자생 차나무는 뿌리의 직근성 때문에 예로부터 "불이직수(不移稙樹)라 하여 사람들이 옮겨 심지 않았고, 차나무 역시 뿌리를 옮기면 차라리 죽음을 택했기에 선비정신과도 통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말까지 딸이 시집가는 가마에 친정아버지는 차씨를 넣어 주어 시댁에 심게 했단다. 이는 차나무의 뿌리처럼 한 곳에서 깊게 정착하여 남편과 사별하더라도 재혼하지 말고, 지조를 지키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무언중에 암시한 것이다.
우리의 차나무는 “忠臣(충신)은 不事二君(불사이군)이요,列女(열녀)는 不更二夫(불경이부)니라.(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명심보감 입교편) ”지조를 담고 있다.
조선 후기 초의선사(1786-1866)는 이런 우리의 차의 정신을 다도(茶道)로 승화시켜 한잔의 차를 마시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어 기쁨을 얻고 선(禪)에 이르는 길이라 하여 차와 선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다선일여:茶禪一如)
불교 뿐 아니라 유학과 도교,화서(畵書)에도 능했던 초의선사는 그가 기거하던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같은 시대 유배생활에 지친 추사 김정희에게 차를 대접하며 교유를 가졌다.
그가 기거했던 “한 마리 새가 쉬는 데는 나무 한가지면 충분하다”는 일지암(一枝庵) 의 뜻과 같이 두 사람은 다인(茶人)으로서의 우정을 쌓아 나갔다.
초의선사에게 부처가 되기 위한 깨달음의 다도(茶道)가 있었다면,추사 김정희에게는 벼루 10개와 붓 천자루의 서도(書道)가 있었다.
추사 김정희는 후일 ‘청관산옥(靑冠山屋)’이란 시 속에서 ‘해묵은 초가 삼간, 비바람을 피할 수 있어(老屋三間, 可避風雨) 빈 산의 선비 하나, 홀로 이소경(離騷經:중국 충신 굴원이 지은 수양지침서)에 주(注)를 다네’라고 썼다.
세상의 모진 풍파와 비바람을 견뎌내고 스스로 인내하며 청빈(淸貧)을 덕으로 삼는 CEO만이 청관산옥에서 달빛아래 연못물을 퍼내고 물고기를 잡는 선객노인((仙客老人)의 풍류를 즐길 자격이 있다.

김영학
Dr.News 대표
제2주차 리포트